INSTRUMENTS  악기 연주자

악기 연주자가 자신의 악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지도 모르고 연주를 한다면 이는 요리사가 재료들의 성질이나 맛도 모른 채 요리를 하는 것과 같다. 특히 다른 어느 악기보다도 건반 악기는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쉽게 소리가 나기 때문에 소리나 악기에 대해 오해를 하기가 쉽다.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우선 악기 자체가 소리를 풍부하게 울리도록 잘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또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악기를 주어도 그 악기를 충분히 다룰 수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 악기는 그의 소리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면 그 빛을 발휘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다. 반대로 아무리 성능이 떨어지는 악기라도 그 악기를 이해하며 훌륭한 테크닉을 갖고 좋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를 만나면 나름대로 최대한의 좋은 소리를 낼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학교 입시나 콩쿨 같은 데에서 명확히 볼 수 있다. 피아노는 다 같은 것을 사용하지만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소리를 내는 데 그 소리의 차이가 매우 뚜렷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소리를 울리는 주체는 악기이지만 그 악기를 울리게 하는 주체는 인체의 일부분(건반악기 에서는 손가락 과 팔)이다. 때문에 연주자는 악기의 성질과 자신이 연주에 사용하여야 할 부분,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하여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건반악기는 소리를 내는 줄과 줄을 때리는 햄머가 나무통(울림통) 속에 들어있어 보이질 않는다. 얼마나 줄을 세게 쳤는지 약하게 쳤는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손끝의 감각을 통해서이다. 건반은 오로지 연주자의 손가락이 지시하는 대로 곧바로 햄머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꾼 일뿐이다. 연주자의 손가락이 건반을 강하게 치면 햄머가 줄(현)을 강하게 때리고 약하게 때리면 역시 햄머는 줄을 약하게 치게 된다. 강하게 쳐진 줄은 크게 소리가 나며 음향판을 강하게 자극하여 음향판은 강한 공기의 파장을 만들어 음폭을 넓혀나간다.
연주자의 마음이 아무리 풍부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싶어도 막상 건반에 닿는 손가락의 힘이 약하여 건반에 충분한 힘을 전달하지 못하면 건반은 마음과는 상관없이 햄머로 하여금 약한 힘으로 줄을 치게 만들어 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건반은 연주자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건반에 직접 닿는 손끝의 지시에만 충실할 뿐이다. 때문에 연주자는 자신의 마음을 잘 실행할 수 있는 훌륭한 손가락을 갖고 있어야 한다.

건반을 너무 강하게 치면 소리가 탁하고 거칠어지며 작은 소리를 위해 너무 약하게 치면 소리가 끊어지거나 파묻히게 된다. 강하고 큰소리이지만 탁하지 않고 맑아야하며, 작은 소리이지만 멀리까지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고 고르게 들려야 한다. 이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연주자의 손에서 나오는 테크닉인 것이다. 연주자의 손가락은 잘 만들어진 줄과 음향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잘 조절하여 공명된 소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음악적인 마음은 풍부한데 막상 건반에서 작용하는 손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역시 음악도 본의 아니게 뜻대로 살릴 수가 없게 됨은 당연한 일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연주자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음악적 표현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연주하는 데는 손가락과 팔만을 사용하지만 이는 몸 전체에 속해 있는 한 부분일 뿐이다. 몸이 불편하면 손도 불편해지고 손과 팔이 불편하면 몸도 불편해진다. 손과 팔은 어깨로부터 분리 되어있더라도 모든 근육이나 신경들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순히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을 위해서라도 그 손가락과 연결되어진 모든 근육과 신경들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않은 채 ‘손가락 독립’을 운운 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다. 더구나 연주자는 자신의 손과 팔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 근육의 움직임과 힘의 방향을 파악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악기를 연주하는데 필요한 손과 팔, 악기의 성질은 물론 나아가서 신체의 흐름까지도 깊이 이해하는 연습방법을 찾을 때 가장 정확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